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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은 왜 언제나 설명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을까요

📑 목차

    영화 원더를 통해 우리가 왜 ‘다름’을 설명의 대상으로 만들어 왔는지를 돌아봅니다.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말의 이면과, 존엄이 시작되는 지점을 차분히 사유합니다.

     

    영화 원더의 주인공 어기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가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품고 있지도 않고,

    누구보다 앞서 나가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다만 태어날 때부터 다른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로,

    세상의 시선을 먼저 마주해야 했던 아이입니다. 영화는 이 사실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어기의 얼굴을 불행의 상징처럼 그리지도 않고, 동정의 대상으로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만날 때, 그의 ‘다름’을 먼저 이해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다름은 언제부터 문제가 되었을까요

     

    사람은 본래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모든 다름이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다름은 개성이라 불리고,

    어떤 다름은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원더 속 어기의 얼굴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그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질문의 대상이 됩니다.

     

    왜 그런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많은 수술을 받았는지. 이 질문들은 호기심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다름은 설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영화는 이 전제가 한 사람을 얼마나 쉽게 고립시키는지를 차분히 보여줍니다.

     

    존엄은 이해받을 때 지켜지는 걸까요

     

    어기는 자신의 얼굴을 납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이해를 구하지도, 동정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으로, 같은 질문을 받고, 같은 실수를 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일입니다

     

    여기서 영화는 중요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해는 조건을 요구하지만, 인정은 조건을 묻지 않습니다.

    다름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선의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상대를 계속 설명의 자리로 밀어 넣습니다. 존엄은 충분히 이해받았을 때가 아니라,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졌을 때 비로소 지켜집니다.

     

    우리는 왜 쉽게 ‘보통’이라는 기준을 세울까요

     

    영화 속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역시 끊임없이 ‘보통’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는 보통의 얼굴과

    보통의 반응을 전제로 작동합니다. 그 기준은 대부분 악의 없이 만들어지지만,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에게는 조용한 배제가 됩니다.

     

    원더는 누군가를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시가 아니라, 기준 자체를 다시 생각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어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국 주변 인물들이 자신의 기준을 내려놓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원더가 오래 남는 이유는 다름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존엄은 성취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며, 설명을 통해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주어져야 할 조건입니다.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애초에 괜찮아질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름을 허락하는 일이 아니라, 다름이 상처받지 않도록 기준을 바꾸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더는 그 질문을 아이의 얼굴을 통해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게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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